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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블렌더 Blender

독립과 재택근무 굿바이

by Celinna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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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2020년 1월 집에서 독립을 했다. 
그동안 쭉 사무실을 따로 얻어 출근이 있는 삶을 살았는데 
독립과 동시에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이유인 즉슨 집의 월세와 사무실 임대료의 이중 부담 때문이었다.
혼자 지내는 집이니 침실과 업무 공간을 제대로 나누어 놓으면 재택 근무도 가능할 지 모른다는 나의 예상은
독립 며칠 만에 예상을 완전히 비껴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첫 독립에다가, 낯선 도시, 새 집... 모든게 새로운 환경이라 그런 것일지 모르니 
한동안 적응기간을 갖다보면 다시 예전같은 생산성을 발휘할 지 모른다 기대했으나
몇 달이 지나도록 나는..
집에서 전혀 집중을 하지 못했고, 책상에 하루종일 앉아있긴 했으나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온갖 집안 일들이 신경이 쓰여서 자꾸 집중이 깨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세미 히키코모리

거기다 독립 후 나의 로망이었던 친구들 초대해서 맛있는 거 해먹기 또한
코로나 시대의 오픈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독립과 동시에 재택 근무를 시작했는데 그와 동시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나는 완전한 고립 생활에 접어들었고, 
어쩌다보니 거의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밖에 꼭 나갈 필요가 없었고, 
장을 보는 것도, 간식을 사는 것도 모두 앱만 있으면 만사가 쉽게 해결되는 세상이라
나는 집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지 않는 이상 하루종일 말을 하지 않는 날들이 점차 늘어갔다.
아....진정한 고립생활이란 이런 것인가.
그야말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팬데믹 시대의 고립을 처절하게 온몸으로 느꼈던 시간이었다.
 


생활패턴

생활 패턴은 사람의 본래 성향을 바꾸기도 하는 것 같다.
ENFP인 나는 외향적이긴 하나 혼자 있는 시간에 에너지를 보충하는 스타일인데
최근 3년의 시간을 겪으며 완전한 내향인의 삶을 지내게 되었다.
물론 혼자있는 시간에 에너지를 보충할 수는 있으나 
내 일상 어느 곳에서도 생기를 찾을 수는 없었다.
바깥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부대끼며 활력을 느끼는 타입이었던게 역시 맞았나보다.
 
라떼를 마시기 위한 우유가 떨어졌을 때 급히 편의점에 나가서 사오는 일,
또는 도서관에 부탁한 책이 집 건너편 전철역에 무인책 대여함에 도착했을 때 가져오는 일,
그리고 아주 간간히 날씨가 좋아 보이는 날의 산책 
이런 드문 날에만 잠깐 외출을 하고 그 이외엔 전부 집에서 보냈다.
그렇게 3년 가까운 시간을 지냈더니 
사람이 점차 다운되어가는 게 느껴졌고, 이상하게도 아토피가 엄청 심해졌다.
 
독립 전 엄마가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매일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될테니
피부가 좋아질거라고 하셨던 것과 달리
이상하게도 자극이 되는 화장도 하지 않고, 햇빛 노출도 별로 없었지만
오랜만에 중증 아토피 상태까지 진행되어 나의 우울감은 최고치를 찍게 되었다.
한 10년간은 아토피가 잠잠하다 싶어 많이 나아진건가 싶었는데
그저 잠잠히 가라 앉아있었다는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독립 생활은 자유 그 자체였고,
내가 하고 싶었던 집 꾸미기의 모든 것을 다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간섭없는 시간대가 자유로운 일상을 살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내 몸에는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요리를 좋아해서 음식들은 대부분 집에서 만들어먹는 생활을 했지만
아토피가 음식만의 문제는 아니니 전반적으로 내 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암튼 그렇게 나의 만 3년하고 8개월의 독립생활을 열흘 전 청산하고 
다시 엄마와 집을 합치게 되었다. 
그리고 작업실로 사용할 사무실은 따로 구해서 이사도 마쳤다.
자유로움은 사라졌지만 대신 정서적 안정을 가질 수 있고,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일상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아직은 조금 불편한 것들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긍정적인 부분이 훨씬 큰 것 같아
예전에 열심히 일하던 그 시절의 일상 패턴으로 다시 바꿔보려고 한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집, 그리고 새로운 사무실.
아직은 낯설지만 마음에 든다.

젖은 풀냄새가 가득했던 오늘의 퇴근길.

비 온 후에는 풀냄새가 유독 강해져서 도심에 있지만 자연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나무가 있는 장소에서 비온 후에만 느낄 수 있는 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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